문화

[스크랩] 고양이를 부탁해 & 태풍태양

유진선데이 2006. 3. 16. 08:37

 

영화광은 아니지만 보고싶은 영화가 있으면 자주 극장을 찾곤 한다. 그런데 이 두 영화는 개봉 당시 극장에서 보지 못했다. 2001년 고양이를 부탁해, 2004년 태풍태양. 2001년에 난 대학교 3학년이었고 2004년엔 학교를 졸업하고 막 사회생활을 시작할 즈음이었다. 어떤 이유로 이 두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지 않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만약 그때 이 영화를 봤었더라면 내 생활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아마도 그때 영화를 보지 않은 이유는 10대들 이야기를 가볍게 다룬...하이틴 신인 스타를 띄워주기 위한 그런 영화라고 단정지었던 것 같다. 단지 포스터 이미지만을 보고 말이다.

 

 

 

 

지금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게 '고양이를 부탁해'가 높은 흥행 기록을 남기지 못해 일찍 종영을 하였는데 일부 팬들의 요청으로 한 영화관에서 재상영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 같다. 그 소식을 듣고 한 번쯤 보고 싶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어찌하다보니 고양이 3마리를 키우고 있지만 2001년에 처음으로 고양이 한 마리를 분양 받아 한창 귀여움을 맛보고 있던 터라 더욱 이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냥 영화 제목에 '고양이'가 있으니까... 

 

이 두 영화가 연관이 있는 이유는 같은 감독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정재은 감독. 시나리오 역시 두 영화 모두 감독이 직접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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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독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지만 '태풍태양'을 보고 누구일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고양이를 부탁해' 감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섯개의 시선' 중에서 뚱뚱하고 못생긴 여고생이 출연하여 겪는 이야기를 그린 단편 영화도 이 감독의 작품이었다. 이 세 영화를 보고 느낀점이 있다면 정재은 감독 영화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고양이를 부탁해>에는 '고양이'가 나온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가장 궁금했던 건 과연 '고양이'가 나올까에 대한 것이었다. 왜 제목은 그렇지만 그것이 진짜 고양이가 아닌 상징적인 그 무엇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짜 '고양이'가 나오긴 하더군. 이제 고양이가 나온다는 것을 알았으니 고양이가 왜 나오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아니 생길 수 없다. 제목에까지 고양이가 등장하는 걸 보면 뭔가 중요한 뜻을 내포하고 있으리라는.....감독의 심오한 뜻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또한 아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다섯 명 중 가장 불운해 보이는 캐릭터 '지영'의 앞에 가장 먼저 나타난다. 부모님은 교통 사고로 돌아가셨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천정이 무너져 내려가는 집에서 살고 있으며 직업은 무직인 지영. 거기에다가 가장 절망적인 것은 지금의 상황이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 사람이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 지영에게 한 가지 희망적인 모습이 보인다면 바로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타이포그래피'를 연습하는 것이다. 지영의 미래이자 희망. 자기가 완성한 작품 하나하나에 고양이 발도장을 찍는 것은 바로 '고양이'가 현실을 벗어난 존재, 뭔가 미래의 희망을 보여주는 몽환적 존재라고 암묵적 임명을 해 놓았기 때문은 아닐까. 조금씩 무너지던 지영이네 집 천정이 완전히 무너지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저 세상으로 가셨던 날, 고양이 혼자 살아남아 지영의 외로움의 크기를 덜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간에 고양이는 잠시 '혜주' 앞에도 나타난다.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이고 현실에 아주 잘 적응하고 있는 듯한 혜주에게 고양이는 필요치 않은 존재다. 혜주는 현재 자신의 상황만 중요할 뿐 어떤 미래나 희망을 준비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돌봐야 하는 존재가 옆에 있다는 것 자체가 거추장스러운 일일 뿐이다.

 

 

 

고양이는 몽환적인 분위기와 함께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전혀 내키지 않으면 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귀찮게 여겨지면 혼자 있기를 즐기는 동물이다. 다섯 명의 등장 인물 중에서 가장 포용력 있는 인물 '태희'와 태희에게까지 온 고양이 '티티'는 이런 성향에서 통하는 점이 있다. 자유에 대한 갈망....그 자유는 이기주의가 아닌 친구와 함께하는 자유이기에 더욱 값질 수 있는 것 같다.

 

영화 속에서 '티티'는 개개인에게는 희망적 존재, 자유분방한 존재, 거추장스런 존재 등으로 여겨지지만 전체적인 흐름으로 봐서는 친구 간의 '관계'를 끈끈이 이어주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지영에게서 혜주에게로, 또 다시 지영에게서 태희 그리고 쌍둥이 친구들에 이르기까지....태희와 지영은 떠나지만 '티티'로 연결된 친구들 간의 관계는 그래도 유지되고 있다는....그런 관계의 중요성을 '고양이'는 대변하고 있는 게 아닐까.........흠..너무 거창했나? -,-

 

한가지 분명한 것은 고양이가 단지 애완 동물로서의 역할만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또 다시 우리 집에 어슬렁거리고 다니는 뿌지, 뚱, 따옹이를 보니 뭔가 대단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내 미래를 이들은 다 알고 있을 것 같은....그런 기대감이 사알짝 든다는 말이다.

 

<태풍태양>에는 '태풍'과 '태양'이 공존한다.

 

 

'태풍태양'은 한 영화 사이트에 캐쉬 잔액이 남아 있어 우연히 보게 되었다. 언제 충전을 해 두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영화는 보고싶은데 극장가기는 귀찮고, 비디오 대여점에 가기는 더더욱 귀찮은....그런 귀차니즘의 초절정에 달했을 때 캐쉬 잔액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 만큼 봉 잡은 상황이 또 있을까...^_____________^

 

많은 한국 영화 중에서 이 영화를 보겠다고 플레이 버튼을 누른 건 작년 연말 시상식 때 천정명이 이 영화로 신인상을 받았던 게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뭔가 연기를 잘 했으니 신인상을 주었을 것이고....그렇담 보고나면 허무한 그런 영화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태풍태양'은 어떤 내용인지 전혀 모르고 본 영화다. '야수와 미녀'에 출연했던 김강우도 나오고 천정명도 나온다. 껄렁한 역할이 잘 어울리는 온주완('발레 교습소'에서도 비슷한 이미지였던 것 같다)도 나오고 가수로 더 익숙한 얼굴 김상혁 군도 나온다.

 

출연진이 대거 젊은 남자 배우들로만 구성된 이유. 포스터만 보면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삼각 관계가 골자인 듯 하지만 영화 내용은 전혀 다르다. 하지만 배우들이 남자들이어야만 영화 메세지를 더욱 잘 살릴 수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젊은 여자 배우들로 구성되어야만 '고양이를 부탁해'가 가능했었던 것처럼....

 

'태풍태양' 내용의 골자는 '어그레시브 스케이트'를 타는 스케이터들의 삶이다. '인라인 스케이트'가 단순히 타고 앞으로 나가기 위한 레저 스포츠라면 '어그레시브 스케이트'는 '묘기'를 보여주기 위한 익스트림 스포츠다. (좀더 자세한 내용은 DVD에 있는 보너스 트랙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들은 태풍과 같이 나타났다가 경찰에 쫓겨 바람과 같이 사라진다. 경찰은 이 사회에는 그들이 마음 놓고 스케이팅을 즐길만한 공간이 없음을 말해준다. 즉 어그레시브 스케이터는 이 사회가 아직 호락호락하게 받아줄만한 존재들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이 태풍의 중심에는 '소요'라는 인물이 있다. 막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한 초보자. 부모님은 어느날 갑자기 외국으로 떠나고 홀로 남은 소요에게 기댈 곳이라고는 스케이트가 전부였다. 그리고 자유롭게 즐기는 스케이터들의 삶이었다. 그들에게는 열정은 있지만 계획된 미래는 없다. 때문에 막연하게 동경할 수는 있지만 무작정 따라갈 수도 없는 게 어그레시브 스케이터들의 미래다.

 

 

 

하지만 감독은 이들의 불투명한 미래보다는 지금 현재를 열정적으로 즐기는..그리고 그 열정 안에는 단순히 놀고 즐기자는 것이 아닌 이들의 심각한 고민과 땀이 베어있음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 세상에 자신이 하는 일을 무의미하게 여기는 것만큼 가난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들은 누구보다도 부자들이다.

 

계단 한 층 한 층을 안전하게 올라가는 이들의 삶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도 조금만 눈치 작전을 펴면 알 수도 있다. 영화 속에서 '학교에서는 시간만 잘 지키고 얌전하기만 하면 생활하는데 별 무리가 없다'는 소요의 대사처럼 말이다. 계획한 대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약간의 겁이 있다. 계획한 대로 안되면 안되는 그 어떤 무언의 규율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두려운 것은 불투명한 미래가 아니다. 그건 바로 스스로 먹는 마음 가짐의 변화다. 스케이터라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잠시라도 의심을 하는 순간이 그들에게는 큰 두려움이 되는 것이다.

 

시커멓게 먹구름으로 가려있던 하늘이 걷히고 구름이 햋볕을 가렸다가 열었다가 하는 그런 날씨를 종종볼 수 있다. 어두웠다가 다시 밝아졌다가 또 다시 어두워지는 그런 날씨....그럴 땐 먹구름에 가려진 햇빛이 더욱 밝게 느껴진다. 온갖 갈등과 시련을 겪고 결국 세계 챔피온 대회에 출전하는 '소요'의 마지막 힘찬 스케이팅처럼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건 지난 연말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천정명이 아닌 김강우에게 줘야 했지 않을까에 대한 것이다. '모기'역할을 맡은 김강우. 극중 이름 처럼 자유롭게 날아서 마지막 일침을 가하는 모기처럼 자유분망하면서도 그 자유로움에 확신이 서지 않을 때 느끼는 방황 같은..그런 복잡한 심정을 잘 표현하였던 것 같다. '소요'는 그냥 순진한..그런 모습만 보였으니까 김강우가 받았어야 했다.(그냥 그렇게 우기련다.ㅎㅎㅎ)

 

 

이 배우가 바로 김.강.우.

 

 

'고양이를 부탁해'와 '태풍태양'이 좋은 이유는 자유로움의 목소리를 실컷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즐기고 싶은 대로 즐기는 것인데 그것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결국 즐기고픈 쪽으로 판단을 내리는 것. 누구나 자유로운 삶을 꿈꾸지만 마음 먹은 대로 잘 되지 않는 현실에서 이 두 영화는 태풍 뒤 태양처럼 시원함을 느끼게 해준다.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고양이'를 부탁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를 위해서 지금 우리 냥이들을 잘 보살펴 두어야 겠다. 태풍 뒤 태양을 좇기 위해선 고양이를 부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양양씀

 

 

보태기 한 판..

얼마 전 수영장 가는 길에 우연히 알게된 사실. '태풍태양'에 등장했던 한 스케이팅 장소가 올림픽 공원 안에 있는 한 조형물이었던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을 텐데 영화 한 편이 그 조형물 앞을 서성이게 만들었다. 모기가 스케이팅을 한 후에 조형물에 '먹었다'라는 낙서를 해 놓는 장면이 있는데 혹시 그 낙서가 아직도 남아 있나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매직이 약간 지워진 채 아직도 흐릿하게 남아있었다. 어찌나 반갑던지......다 지워지기 전에 기념 사진 촬영 꼭 해야쥐!!!

출처 : 고양이를 부탁해 & 태풍태양
글쓴이 : 양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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