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전교조 세대에 속하는 나는 영화배우 정진영하면 떠 오르는 영화가 <왕의 남자>가 아니라 <닫힌 교문을 열며>다. 1992년에 발표된 이 영화는 전교조 투쟁을 극화한 몇 안되는 대중 영화 중 하나다. 청렴하고 고귀한 사도의 길을 가는 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겠다고하자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다. 빨갱이라고 했고 머리채를 쥐어 잡혀 교문 밖으로 내동댕이쳐 졌다. <닫힌 교문을 열며>는 그런 과정을 다룬 영화다. 분명 이 영화는 일선 교사와 학생들의 편에서 당시의 상황을 다뤘다.
(영화 <파업전야>의 필름 압수를 하는 장면)
이 영화의 하일라이트는 영화 홍보 포스터에 인용되기도 했던 비오는 날 굳게 닫힌 교문 앞에 서 있던 정진영과 아이들이었다. 그 장면이 너무나 깊이 각인되어 나는 지금도 정진영과 이 영화를 함께 떠 올릴 수 밖에 없다. 스크린 쿼터 축소 반대 시위 현장에 정진영이 서 있는 게 전혀 낯설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상영관을 찾지 못해 대학과 일부 소극장에서 특별 상영 형식으로 공개되었다. 이 영화의 제작사인 <장산곶매>는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오! 꿈의 나라>를 만들었고, 노동자의 투쟁을 다룬 <파업전야>를 만들기도 했다. 돈이 없는 제작사임은 분명하고 영화를 만들 때마다 온갖 고초를 당해야 했다.
이 비오는 장면에 대한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해직을 당했던 전교조 교사들과 실제 학교를 다니던 '함께 가자 우리'라는 고등학생 단체의 학생들이 참여를 했다. 그런데 비용 부족 등으로 촬영이 지연되면서 여름으로 설정되었던 이 장면은 영하 12도의 겨울에 촬영이 되었다. 무려 9시간 동안 진행된 이 장면의 촬영에서 급기야 6명이 실신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영화 <두사부일체>의 후반부에 <닫힌 교문을 열며>를 패러디한 장면이 나온다. 아니다, 그 장면은 영화 감독이 어떤 영화를 패러디한 것이 아니라 '학원 문제'를 극화하는 대표적인 소재였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정진영은 본격적으로 데뷰하기 전에 여성 사회주의 운동가인 로자 룩셈부르크의 삶을 다룬 단편영화 <로자를 위하여>에 출연하기도 했다. 데뷰 이후의 영화는 흥행 중심의 영화들이었지만 나는 아직 정진영이 제대로 자신의 영화를 해 보지 못했다고 믿는다.
그 때의 아이들이 이제 삼십 대 중반과 후반이 되었다. 또 그들 중 일부는 당시 해고를 당하거나 불이익을 당했던 교사와 같은 직업을 갖기도 했다. 학교가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하기도 하고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하기도 한다. 영화 <닫힌 교문을 열며>에서 '교문'은 부조리와 불합리, 독재와 압제의 상징물이었다. 또한 세상으로부터 어린 학생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닫아 둔 교문이 오히려 아이들을 죽인다는 아이러니의 상징이기도 했다. 당시의 우리들도 오늘 날의 아이들도 이렇게 이야기한다,
"학교는 교문이 아니라 선생과 아이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교문이 없더라도 학교는 늘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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